엠마 왓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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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엠마 왓슨은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영국의 배우이자 모델이다. 왓슨은 2001년 영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역으로 데뷔하여, 《해리 포터》 시리즈 전편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마릴린: 일주일간의 휴가》, 《월플라워》, 《블링 링》, 《노아》, 《미녀와 야수》, 《작은 아씨들》 등 다양한 영화에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왓슨은 모델 활동과 더불어 여성 인권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유엔 여성 친선대사로 활동했다. 그녀는 다수의 상을 수상했으며, '엠마 왓슨 효과'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로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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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왓슨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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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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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엠마 샬럿 듀에어 왓슨 |
출생일 | 1990년 4월 15일 |
출생지 | 프랑스 파리 |
국적 | 영국 |
민족 | 잉글랜드인 |
신장 | 165cm |
학력 | 브라운 대학교 (문학사) |
직업 | 배우, 활동가 |
활동 기간 | 1999년–현재 |
출연 작품 | |
주요 작품 | 해리 포터 시리즈 마릴린 7일간의 사랑 월플라워 블링 링 노아 약속의 배 콜로니아 미녀와 야수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나의 작은 아씨들 |
수상 | |
MTV 무비 어워드 | 최고 연기상 2017년 미녀와 야수 |
보스턴 영화 비평가 협회상 | 여우조연상 2012년 월플라워 |
기타 정보 | |
웹사이트 | 엠마 왓슨 공식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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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린 시절
엠마 샬롯 듀에르 왓슨[5]은 1990년 4월 15일 프랑스 파리에서 잉글랜드 출신의 변호사인 재클린 루이스비와 크리스 왓슨 부부의 딸로 태어났다.[6][7][8][9][355] 그녀의 외할머니가 프랑스인이었기 때문에 파리에서 태어났으며,[355][356][357] 5세까지 파리 근교의 메종라피트에서 살았다.[7]
부모는 그녀가 어렸을 때 이혼했고, 왓슨은 어머니와 3살 터울의 남동생 알렉스와 함께 잉글랜드 옥스퍼드셔로 이주하여 성장했다.[7][10][11][355][358] 주말에는 런던에 있는 아버지의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7][10][11][355][358] 왓슨에게는 재혼한 아버지를 통해 생긴 이복여동생 루시 왓슨이 있다.[358] 그녀는 프랑스어를 조금 할 줄 알지만, 예전만큼 유창하지는 않다고 말한다.[12][359] 일부 자료에 따르면 독일어와 이탈리아어도 구사할 수 있다고 한다.[359]
6세 때 배우가 되기를 꿈꾸기 시작했으며,[360][13] 옥스퍼드에 있는 스테이지코치 극예술(Stagecoach Theatre Arts)의 시간제 연극 학교에서 노래, 춤, 연기를 배웠다.[361][13] 7세에는 학교 시 낭송 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다.[362] 왓슨은 2003년까지 옥스퍼드의 명문 사립 초등학교인 드래곤 스쿨(Dragon School)에 다녔다.[7][355]
10세 무렵, 왓슨은 《아서: 더 영 이어스》(Arthur: The Young Years)와 《행복한 왕자》(The Happy Prince) 등 스테이지코치 극단 및 학교 연극에 참여했지만,[362][13] 《해리 포터》 시리즈 출연 이전까지 전문적인 연기 경력은 없었다.[362] 드래곤 스쿨 졸업 후, 왓슨은 옥스퍼드의 명문 여자 사립 학교인 헤딩턴 스쿨(Headington School)로 진학했다.[7][355] 영화 촬영 중에는 학업을 위해 동료 배우들과 함께 하루 최대 다섯 시간 동안 개인 교사로부터 수업을 받았다.[363][15] 2006년 6월, 그녀는 GCSE(영국의 중등 교육 자격 시험) 10과목 중 8과목에서 최고 등급인 A*를, 나머지 2과목에서 A 등급을 받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7][16][355][364]
3. 경력
엠마 왓슨은 1999년 J. K. 롤링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역 오디션에 합격하며 아역 배우로 데뷔했다.[360] 2001년 개봉한 이 영화의 성공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이후 2011년까지 총 8편의 《해리 포터》 시리즈 전편에 출연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젊은 예술가상, 내셔널 무비 어워드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으며,[369][244] 2007년에는 동료 배우들과 함께 할리우드 그로만스 차이니즈 극장 앞에 손과 발자국을 남기는 영예를 안았다.[245]
《해리 포터》 시리즈 외에도 꾸준히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2007년 BBC TV 영화 《발레 슈즈》를 시작으로,[59][393] 애니메이션 《작은 영웅 데스페로》(2008)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으며,[65][399] 시리즈 종결 이후에는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2011), 《월플라워》(2012), 《블링 링》(2013), 《노아》(2014)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하며 성인 연기자로서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특히 《월플라워》에서의 연기는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여러 상을 수상했다.
2017년 디즈니 실사 영화 《미녀와 야수》에서 주인공 벨 역을 맡아 전 세계적인 흥행 성공을 이끌었으며, 이는 왓슨의 대표작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257] 2019년에는 그레타 거윅 감독의 영화 《작은 아씨들》에서 메그 마치 역을 연기하며 다시 한번 연기력을 인정받았다.[116][437]
배우 활동 외에도 다방면에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버버리 등 유명 패션 브랜드의 모델로 활동했으며, 2014년 UN 여성 친선대사로 임명되어 양성평등 캠페인 히포시(HeForShe) 활동을 주도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228] 2020년에는 프랑스 명품 그룹 케링의 이사회 멤버이자 지속가능성 위원회 의장으로 임명되었으며,[259] 2023년에는 남동생과 함께 진(Gin) 브랜드 'Renais'를 론칭하는 등 사업가로서의 면모도 보이고 있다.[260]
학업에도 열정을 보여 2014년 브라운 대학교에서 영문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고,[272] 2023년 가을부터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크리에이티브 라이팅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273]
왓슨은 《해리 포터》 시리즈를 통해 상당한 부를 얻었으며, 2009년에는 "지난 10년간 가장 높은 흥행 수입을 올린 여배우"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오르기도 했다.[226] 2010년에는 포브스가 선정한 '할리우드에서 가장 높은 수입을 올린 여성 스타' 중 한 명으로 꼽혔다.[248] 2016년 잠시 연기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으나,[256][432] 이후 성공적으로 복귀했으며, 2023년 인터뷰를 통해 앞으로도 연기 활동을 이어갈 의사를 밝혔다.[126]
3. 1. 1999–2003: 데뷔와 초기 경력
1999년, J. K. 롤링의 베스트셀러 소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영화화하는 작업이 시작되면서 배역 캐스팅이 진행되었다. 캐스팅 에이전트는 왓슨의 옥스퍼드 연극 교사를 통해 그녀를 발견했으며, 제작자들은 그녀의 자신감 있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28] 왓슨은 학교 연극 외에는 전문적인 연기 경험이 없었지만, 9살 때부터 총 8번의 오디션을 거쳤다. 결국 제작자 데이비드 헤이먼은 그녀를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역으로 최종 결정했고, 다니엘 래드클리프와 루퍼트 그린트가 각각 해리 포터와 론 위즐리 역에 함께 캐스팅되었다. 원작자 롤링은 왓슨의 첫 번째 스크린 테스트 때부터 그녀가 헤르미온느 역에 적합하다고 지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28][360]
2001년 개봉한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왓슨의 영화 데뷔작이었다. 이 영화는 개봉일 및 개봉 주말 흥행 기록을 세우며 2001년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31][32][365][366] 비평가들은 세 주연 배우의 연기를 호평했으며, 특히 왓슨은 많은 찬사를 받았다.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그녀의 연기를 "감탄스럽다(admirable영어)"고 평가했고,[33][367] 《IGN》은 그녀가 "쇼를 훔쳤다(stole the show영어)"고 극찬했다.[34][368] 왓슨은 이 영화에서의 연기로 5개의 상 후보에 올랐으며, 젊은 예술가상(영 아티스트 어워드)에서 젊은 여자연기상을 수상했다.[35][369]
이듬해인 2002년, 왓슨은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다시 헤르미온느 역을 맡았다. 주연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왓슨과 동료 배우들이 영화 사이 기간 동안 눈에 띄게 성숙했다고 언급했다.[37][370] 반면, 《타임》지는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이 왓슨의 인기 있는 캐릭터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38][371] 왓슨은 이 영화에서의 연기로 독일 잡지 《브라보》가 수여하는 오토상(Otto Award)에서 실버 스타상을 수상했다.[39][372]
3. 2. 2004–2011: 지속적인 성공, 해리 포터와 다른 역할들
2004년, 세 번째 시리즈인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가 개봉되었다. 왓슨은 이 영화에서 헤르미온느의 역할이 더 적극적이 된 것에 만족하며, 자신의 역할이 "카리스마" 있고 "연기하기 환상적인 역할"이라고 평가했다.[40][373] 비평가들은 왓슨의 연기를 칭찬했는데, ''뉴욕 타임스''의 A. O. 스콧은 "다행히 래드클리프 씨의 평범함은 왓슨 양의 까칠한 조급함으로 상쇄된다. 해리가 확장된 마법 능력을 과시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 헤르미온느는 ... 드레이코 말포이의 마땅한 코에 마법적이지 않은 펀치를 날려 가장 큰 박수를 받는다"고 평했다.[41][374] 《아즈카반의 죄수》는 시리즈 중 가장 낮은 수익을 기록했지만, 왓슨은 이 영화에서의 연기로 오토 어워드(Otto Award) 두 개와 토털 필름에서 주관한 시상식에서 올해의 아역 연기상을 수상했다.[42][43][375][376]
2005년 개봉한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은 왓슨과 《해리 포터》 시리즈 모두에게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다. 이 영화는 개봉 주말과 영국 개봉 주말에서 시리즈 최고 수익 기록을 세웠다. 비평가들은 십대가 된 왓슨과 동료 배우들의 성숙해진 연기를 칭찬했으며, ''뉴욕 타임스''는 그녀의 연기를 "감동적인 정도로 진심 어렸다"고 평가했다.[44][377] 왓슨은 영화 속 유머가 세 주인공의 성숙 과정에서 오는 긴장감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며, "저는 모든 언쟁을 좋아했어요. ... 그들이 서로 다투면서, 문제가 생겨나오는 게 훨씬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46][378] 이 영화로 세 개의 상 후보에 오른 왓슨은 오토 어워드에서 브론즈 스타상을 수상했다.[47][48][379][380] 같은 해 말, 왓슨은 ''틴 보그''의 표지를 장식한 최연소 인물이 되었다.[381]
2006년, 왓슨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80번째 생일을 기념하여 제작된 《해리 포터》 특별 미니 에피소드 《여왕의 핸드백》(The Queen's Handbag)에서 헤르미온느 역을 연기했다.[50][383]
다섯 번째 영화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은 2007년에 개봉하여 전 세계 개봉 주말 수익으로 3.327억달러를 기록하는 등 큰 재정적 성공을 거두었다.[51][384] 왓슨은 이 영화로 첫 내셔널 무비 어워드(National Movie Award)에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52][385] 시리즈의 명성이 높아짐에 따라, 왓슨은 2007년 7월 9일 동료 배우 다니엘 래드클리프, 루퍼트 그린트와 함께 헐리우드의 TCL 차이니즈 시어터 앞에 손, 발, 마법 지팡이 자국을 남겼다.[53][386] 같은 해 7월까지 왓슨은 《해리 포터》 시리즈를 통해 1000만파운드 이상(당시 한화 약 200억원)을 벌었다고 알려졌으며, 더 이상 돈을 벌기 위해 일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인정했다.[54][351]
《불사조 기사단》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시리즈의 미래는 세 주연 배우가 마지막 두 편의 영화 출연 계약을 망설이면서 불확실해졌다.[55][389] 래드클리프는 2007년 3월 2일에 최종 계약했지만,[389] 왓슨은 공동 출연자들보다 더 망설였다.[56][390] 그녀는 역할에 4년의 시간을 더 투자해야 하는 중요한 결정이라고 설명했지만, 결국 "헤르미온느를 그렇게 떠나 보낼 수는 없었다"며[57][391] 2007년 3월 23일에 계약했다.[58][392]
왓슨의 첫 《해리 포터》 외 역할은 BBC 텔레비전 영화 《발레 슈즈》(2007)였다. 이 작품은 노엘 스트릿필드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것이다.[59][393][60][394] 감독 샌드라 골드바허는 배우 지망생 폴린 파슬 역을 맡은 왓슨에 대해 “완벽하다”며 “그녀는 당신이 계속 응시하고 싶게 만드는 섬세하고 매혹적인 아우라가 있다”고 평가했다.[61][395] 《발레 슈즈》는 2007년 박싱 데이에 영국에서 570만 명의 시청자를 기록하며 방송되었고, 평가는 엇갈렸다.[62][396][63][397][64][398]
이듬해, 왓슨은 애니메이션 영화 《작은 영웅 데스페로》(2008)에서 피 공주(Princess Pea) 역할의 목소리 연기를 맡아 성우로 데뷔했다. 이 영화에는 매튜 브로데릭, 시고니 위버, 더스틴 호프만 및 《해리 포터》의 동료 배우 로비 콜트레인 등이 출연했다.[65][399] 영화는 2008년 12월 개봉하여 전 세계적으로 8700만달러의 수익을 올렸다.[66][400]
여섯 번째 《해리 포터》 영화인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의 본 촬영은 2007년 말에 시작되었고, 왓슨의 촬영 분량은 2007년 12월 18일부터 2008년 5월 17일까지 진행되었다.[67][401][68][402] 영화는 원래 2008년 11월 개봉 예정이었으나 연기되어 2009년 7월 15일에 개봉했다.[69][403][70][404] 주연 배우들이 1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비평가들은 그들을 다른 베테랑 배우들과 동등하게 평가하기 시작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출연진을 "현대 영국 연기의 포괄적인 가이드"라고 묘사했다.[71][405] ''워싱턴 포스트''는 왓슨이 “지금까지 그녀의 연기 중 가장 매력적인 연기를 선보였다”고 평했으며,[72][406]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주연 배우들이 “새로운 해방과 활기를 불어넣었고, 남은 시리즈에서 가진 모든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술했다.[73][407] 2009년, 왓슨은 ''포브스''가 선정한 '가장 가치있는 어린 스타' 리스트에서 6위에 올랐다.[387]
마지막 편인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의 촬영은 2009년 2월 18일에 시작되어 2010년 6월 12일에 종료되었다.[74][408][75][409] 재정 및 각본상의 이유로 원작 소설은 두 편의 영화로 나뉘어 연속적으로 촬영되었다.[76][410][77][411] 촬영을 마친 후 왓슨은 “내가 100살이 되어 흔들의자 위에서 살아가게 되더라도, 《해리 포터》 시리즈에 출연했다는 걸 여전히 자랑스러워하고 있을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2010년 2월, 왓슨은 2009년 한 해 동안 1900만파운드(당시 한화 약 330억원)의 수입을 올려 '헐리우드에서 가장 높은 수입을 올린 여성 스타'로 선정되었다고 보도되었다.[388] 2010년 6월 26일, 왓슨은 원 나잇 온리의 노래 〈Say You Don't Want It〉 뮤직 비디오에 출연했으며, 이는 채널 4를 통해 처음 공개되었다.[80][412]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1부》는 2010년 11월에 개봉되었고,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는 2011년 7월에 개봉되었다.[78] 《죽음의 성물 2부》는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어 시리즈 중 최고 흥행작이 되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13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79] 왓슨은 이 마지막 두 편의 영화에서 각각 1500만달러의 개런티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12월, 왓슨은 "지난 10년간 가장 흥행 수입을 많이 올린 여배우"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되었다. 그녀가 2000년대에 출연한 영화들의 총 수입은 약 54억달러(당시 기준)에 달했다.[226] 2011년 1월, 포브스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루퍼트 그린트와 왓슨을 "스크린에서 가장 많은 흥행 수입을 올린 커플" 1위로 선정했으며, 이들은 시리즈를 통해 42억달러(당시 기준)를 벌어들였다고 발표했다.[227]
《해리 포터》 시리즈 이후 왓슨의 첫 영화 역할은 2011년 개봉한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이었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의상 보조 루시 역을 맡아 주인공 콜린 클라크(에디 레드메인)와 잠시 교제하는 인물을 연기했다.[81][413][82][414]
3. 3. 2012–현재
2012년 9월,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 《월플라워》가 개봉되었다. 왓슨은 이 영화에서 샘 역할을 맡았으며, 촬영은 2011년 여름에 진행되었다.[415][416] 같은 해 6월,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영화 《노아》에 캐스팅되어 다음 달부터 촬영을 시작했다.[352]
2013년에는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 《블링 링》에서 주연 닉키 무어 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실제 발생했던 "블링 링" 강도 사건을 바탕으로 하며, 왓슨은 텔레비전 탤런트이자 강도 사건 연루자인 실존 인물 알렉시스 네이에즈를 연기했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지만, 왓슨의 연기는 비평가들로부터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호평을 받았다. 같은 해, 아포칼립스 코미디 영화 《디스 이즈 디 엔드》에 본인 역할로 특별 출연하여 세스 로건, 제임스 프랭코 등과 함께 연기했다.[417][418] 왓슨은 이 영화 출연에 대해 "최고의 코미디언들과 작업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419] 한편, 2013년 3월 디즈니의 실사 영화 《신데렐라》 출연을 협상했으나 최종적으로 무산되었다.[420] 또한, 엠마 포레스트의 회고록을 각색한 영화 《유어 보이스 인 마이 헤드》 출연 여부에 대해 혼선이 있었으나, 2013년 9월 프란체스카 그레고리니 감독 연출로 왓슨이 포레스트 역을 맡는 것이 확정되었다고 보도되었다.[421][422] 이 외에도 미출간 소설 원작의 3부작 영화 《Queen of the Tearling》의 주인공 켈시 글린 역과 총괄 프로듀서를 맡고,[423][424] 아데나 할펀의 소설 "29"를 각색한 영화 《위아영》에 출연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425] 2013년 10월, 왓슨은 영국 GQ에서 '올해의 여성'으로 선정되었고,[426] 같은 달 영화 팬 5만여 명의 투표로 진행된 설문 조사에서 '가장 섹시한 영화 배우' 1위를 차지했다.[427]
2014년 3월, 영화 《노아》가 개봉되었고, 왓슨은 주인공 노아(러셀 크로우)의 양녀이자 샘(더글라스 부스)의 연인 일라 역을 연기했다.[352] 같은 해 로스 앤젤레스에서 열린 브리타니아 시상식에서 '올해의 영국 예술가상'을 수상했으며, 수상 소감에서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촬영 중 세상을 떠난 자신의 애완 햄스터에게 상을 바친다고 언급했다.[428] 또한 2014년 5월 25일, 브라운 대학교에서 영문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272]
2015년에는 두 편의 스릴러 영화에 출연했다. 《콜로니아》에서는 다니엘 브륄, 미카엘 니크비스트와 함께 연기했고,[429]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리그레션》에서는 에단 호크, 데이빗 듈리스와 호흡을 맞췄다.[430][431] 같은 해 타임 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228]
2016년 2월, 왓슨은 1년간 연기 활동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 기간 동안 "자기 개발"과 여성 인권 운동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432]
2017년, 디즈니 실사 영화 《미녀와 야수》에서 주인공 벨 역을 맡아 댄 스티븐스와 호흡을 맞췄다.[108][433] 왓슨은 벨 캐릭터에 자율성을 부여받아, 아버지를 돕는 발명가로 재해석하고 의상에 블루머와 부츠를 추가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했다.[109] 이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노래 실력을 선보였으며, "그 자체가 겁이 났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434]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12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기록하며 2017년 두 번째, 역대 17번째 흥행 영화가 되었다.[111] 왓슨은 출연료 300만달러 외에 흥행 수익 분배를 통해 총 1500만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110] 영화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왓슨의 연기 역시 "벨로서의 용기, 기개, 당당함, 지성, 강렬한 독립심"을 잘 표현했다는 호평을 받았다.[111][112][113] 왓슨은 이 영화를 통해 "화면에서 여성으로 변신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109] 같은 해 4월에는 데이브 에거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더 서클》이 개봉했다. 이 영화에서 왓슨은 거대 기술 기업에 입사하여 감시와 자유에 대한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메이 홀랜드 역을 맡아 톰 행크스와 함께 연기했다.[114] 영화는 비평적으로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상업적으로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115]
2018년 8월, 그레타 거윅 감독의 영화 《작은 아씨들》에 엠마 스톤의 스케줄 문제로 대신 합류하게 되었다.[436]
2019년 크리스마스에 개봉한 《작은 아씨들》에서 왓슨은 네 자매 중 첫째인 메그 마치 역을 연기했다. 이 영화에는 시얼샤 로넌, 플로렌스 퓨, 로라 던, 티모시 샬라메, 메릴 스트립 등이 함께 출연했다.[116][437] 왓슨은 메그 캐릭터에 대해 "페미니스트가 되는 방법이 한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문학적 장치"라며, "그녀의 페미니스트적인 방식은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녀의 선택은 전업 주부이자 아내가 되는 것"이라고 해석하며 페미니즘의 다양성을 강조했다.[117] 포브스는 왓슨이 연기한 메그가 "자매들 중 가장 어려운 역할"일 수 있으며, "꿈이 다른 자매들에 비해 가장 평범하게 끝날 때 방어적인 입장에 놓이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118] 영화는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으며, 제작비 4000만달러로 전 세계에서 2.18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며 흥행에도 성공했다.[119][120][121]
2020년, 왓슨은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해 언급하며, 영화 제작 외에도 활동가로서 소셜 미디어를 통해 "더 많은 목소리를 증폭시키고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계속 배우는 역할"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레드 카펫은 줄고 회의는 더 많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152]
2021년에는 왓슨의 약혼설과 은퇴설이 불거졌으나,[122][123] 왓슨과 대변인 측은 이를 부인했다. 왓슨은 이러한 추측을 클릭베이트라고 비판하며, 코로나19 범유행 기간 동안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느라 대외 활동이 줄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124]
2022년, 왓슨은 HBO Max에서 공개된 특별 프로그램 《해리 포터 20주년: 호그와트로의 귀환》에 출연하여 다른 《해리 포터》 시리즈 출연진들과 재회했다.[125]
2023년,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약 5년간 연기 활동을 쉰 이유에 대해 "그리 행복하지 않았고", "약간 갇힌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연기 활동 복귀 의사를 분명히 밝히며 "다음 적절한 것을 기다릴 것"이고, "여러 개의 얼굴과 사람으로 나를 분열시키지 않고 그것을 할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126] 같은 해 9월, 작문 공부를 위해 옥스퍼드 대학교 대학원의 파트타임 크리에이티브 라이팅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이 과정은 대부분 온라인으로 진행되며, 연 4~5회 정도 현지 출석이 필요하다.[273]
4. 모델과 패션
2005년, 왓슨은 틴 보그(Teen Vogue) 화보 촬영으로 모델 경력을 시작했으며, 이 잡지 표지를 장식한 최연소 인물이 되었다.[6][349] 3년 후, 영국 언론은 왓슨이 샤넬(Chanel)의 코코 마드모아젤 라인 모델로 키이라 나이틀리의 뒤를 이을 것이라고 보도했으나, 양측 모두 이를 부인했다.[127][438] 2009년 6월, 몇 달간의 소문 끝에 왓슨은 버버리(Burberry)의 2009년 가을/겨울 캠페인 모델로 발탁되었음을 확인했으며, 이를 통해 약 6자리 숫자의 모델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128][129][353][439] 그녀는 또한 버버리의 2010년 봄/여름 캠페인에도 오빠 알렉스, 뮤지션 조지 크레이그와 맷 길모어, 모델 맥스 허드와 함께 출연했다.[130][440]
2011년 2월, 왓슨은 영국 엘르(Elle)가 주관하는 스타일 어워드에서 비비안 웨스트우드로부터 스타일 아이콘상을 받았다.[131][441] 이후 2011년 3월, 뷰티 브랜드 랑콤(Lancôme)의 모델로 발탁되어 패션 광고 활동을 이어갔다.[132][354]
왓슨은 패션을 통한 사회적 활동에도 참여했다. 2009년 9월, 공정 무역과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는 패션 브랜드 피플 트리(People Tree)와의 협업을 발표했다.[133][442] 그녀는 이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어드바이저로 활동하며 2010년 봄 컬렉션 제작에 참여했다.[133][134][442][443] 이 컬렉션은 프랑스 남부와 런던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을 선보였다.[134][135][443][444] 왓슨은 이 협업으로 금전적 보상을 받지 않았으며,[138][447] "패션은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기술을 제공하는 좋은 방법"이라며, "자선 단체에 기부하는 대신, 그들이 만든 옷을 구매하고 자부심을 느끼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136][445] 그녀는 젊은 세대가 패스트 패션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싶어 하지만 선택지가 부족하다고 덧붙였다.[136][445] 왓슨은 2010년 가을/겨울 컬렉션에도 참여하며 피플 트리와의 협력을 이어갔다.[139][448]
2013년, 런던의 마담 투소 박물관은 엘리 사브가 디자인한 오트 쿠튀르 드레스를 입은 왓슨의 밀랍 인형을 공개했다. 박물관 측은 왓슨이 방문객들에게 가장 많이 요청받는 인물 중 하나라고 밝혔다.[140][141]
2014년, 왓슨은 영국 패션 어워드(British Fashion Awards)에서 데이비드 베컴, 아말 클루니, 케이트 모스, 키이라 나이틀리 등과 경쟁하여 최우수 영국 스타일상을 수상했다.[142][449][143]
왓슨은 지속 가능한 패션의 초기 지지자로 평가받으며, 공식 석상에서 윤리적인 브랜드의 의상을 자주 선보였다.[144][145] 2016년 멧 갈라에서는 재활용 플라스틱 병으로 만든 캘빈 클라인 드레스를 입었으며,[146] 패션 브랜드의 지속 가능성 정보를 제공하는 앱 '굿 온 유'(Good On You)를 지지했다.[147] 2017년에는 영화 홍보 활동 중 착용한 윤리적 브랜드 정보를 공유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기도 했다. 2018년에는 보그 오스트레일리아 3월호의 객원 편집장을 맡아 패션 지속 가능성 특집을 다루었고, 피터 린드버그가 화보 촬영을 담당했다.[148][149] 2020년에는 중고 의류 웹사이트 ThredUP과 협력하여 개인의 의류 소비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계산하는 '패션 발자국 계산기'를 선보였다.[150]
2020년 6월, 왓슨은 구찌, 이브 생 로랑 등을 소유한 패션 그룹 케링(Kering)의 이사회 멤버로 합류했으며, 최연소 이사이자 지속 가능성 위원회 의장을 맡았다. 케링의 회장 프랑수아-앙리 피노는 그녀의 지식과 다양한 관점을 높이 평가했다.[151] 왓슨은 이 역할을 통해 미래 세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152] 그녀는 2023년까지 이사회 멤버로 활동했다.[153]
2022년 8월, 왓슨은 프라다(Prada) 뷰티의 새로운 향수 'Paradoxe'의 모델로 발탁되었으며, 직접 광고 캠페인 단편 영화의 연출, 각본, 내레이션을 맡았다.[154] 2024년 1월에는 프라다의 지속 가능한 라인인 'Re-Nylon' 컬렉션의 모델이 되었다.[155][156]
5. 학업
옥스퍼드의 드래곤 스쿨을 2003년까지 다녔고,[355][7] 이후 여자 사립학교인 헤딩턴 스쿨로 옮겼다.[355][7] 영화 촬영 중에는 학교에 가지 못하는 대신 하루 최대 5시간 동안 가정교사에게 수업을 받았다.[363][15] 2006년 6월, GCSE 시험 10과목 중 8과목에서 A*, 2과목에서 A 등급을 받았다.[355][364][262][263][264] 2007년에는 영어, 지리, 미술, 미술사 과목에서 AS 레벨을, 2008년에는 미술사를 제외한 3과목에서 GCE A 레벨 A 등급을 취득했다.[7][16][17]
고등학교 졸업 후 갭이어를 가졌으나,[450][18] 학업을 계속할 의지를 밝혔다.[451][19] 예일 대학교, 케임브리지 대학교 등에도 합격했지만,[265] 리버럴 아츠 교육을 받을 수 있는[265]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의 아이비 리그 대학인 브라운 대학교를 선택하여 2009년 가을에 입학했다.[452][20][266] 왓슨은 브라운 대학교의 교육 과정과 영국을 떠나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환경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점을 진학 이유로 꼽았다.[452] 재학 중 헬리콥터로 통학했다는 일화도 있다.[271]
2011년 3월, 대학 입학 18개월 만에 "한두 학기" 과정을 연기한다고 발표했고,[453][21] 2011-12학년도에는 방문 학생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옥스퍼드 대학교 우스터 칼리지에서 공부했다.[454][22][23] 왓슨은 엘런 디제너러스 쇼에서 영화 촬영 때문에 두 학기를 완전히 쉬어 4년제가 아닌 5년 만에 졸업하게 되었다고 밝혔다.[455][24] 2014년 5월 25일, 브라운 대학교에서 영문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며 졸업했다.[456][457][25][272]
2013년에는 요가와 명상을 가르칠 수 있는 공인 자격증을 취득했다.[458][459]
2023년 9월, 옥스퍼드 대학교 레이디 마거릿 홀의 크리에이티브 라이팅 석사 과정(MSt in Creative Writing)에 파트타임 학생으로 입학했다.[26][273]
6. 사생활
왓슨은 2011년 옥스퍼드 대학교에 교환 학생으로 갔을 때 만난 동료 학생 윌 아다모위츠와 교제를 시작했다.[461] 아다모위츠는 왓슨이 2013년 MTV 무비 어워드에서 개척자상(Trailblazer Award)을 받을 때 함께 자리했다.[462] 두 사람은 2014년 초에 헤어졌다.[463] 같은 해, 왓슨은 옥스퍼드 대학교 럭비 선수인 맷 제니와 교제했으나,[464] 11월에 관계를 정리했다. 왓슨의 대변인은 결별 이유로 그녀의 "끊임없는 일 스케줄"을 언급했다.[465] 왓슨은 결별이 힘들었으며, 이후 캐나다의 한 시설에서 일주일간 명상을 했다고 밝혔으나[458], 나중에 명상 코스와 결별은 관련이 없다고 정정했다.[466]
이후 2017년부터 2년간 기술 사업가 윌리엄 나이트와 교제했으며,[216][217] 2018년에는 배우 코드 오버스트리트와,[219] 2021년부터 2023년까지는 기업 임원 브랜든 그린과 만났다.[220][221]
왓슨은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에 함께 출연한 톰 펠튼(드레이코 말포이 역)이 첫사랑이었으며, 시리즈 2편 촬영 때까지 그에게 빠져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274] 다니엘 래드클리프와의 교제설은 본인이 부인했으며, 그 외에도 럭비 선수 존 로커, 레이저라이트의 보컬 조니 보렐, 투자자 제이 바리모어, 원 나이트 온리의 보컬 조지 크레이그 등과 교제설이 있거나 실제로 교제했다.[275]
2010년 인터뷰에서는 연애 상대와의 재산 차이에 대한 생각을 밝히기도 했고,[275] 2011년 인터뷰에서는 자신의 유명세와 바쁜 일정 때문에 연인이 되기 어렵다고 언급하며 당시 남자친구가 없다고 말했다.[276]
2014년 종교에 대한 질문에 자신을 영적인 보편주의자라고 설명했다.[214] 2016년 2월에는 옥스퍼드 대학교 레이디 마가렛 홀의 객원 연구원으로 임명되었다.[215]
어린 나이에 얻은 명성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왓슨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평화를 찾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222] 2013년에는 요가와 명상 강사 자격을 취득했다. 자격 과정의 일환으로 캐나다의 한 시설에서 일주일간 침묵 명상 코스에 참여했는데, 이는 "내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방법을 찾기 위한" 경험이었다.[223][224] 그녀는 명상 훈련을 통해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도 "언제나 내 안에서 안전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225]
7. 여성 인권 운동
왓슨은 소녀들의 교육 증진을 위해 방글라데시와 잠비아를 방문한 바 있다.[467][160] 2014년 7월, UN Women 친선대사로 임명되었다.[468][161] 같은 해 9월, 뉴욕 UN 본부에서 열린 양성평등 지지 캠페인 HeForShe 출범 행사에서 연설을 하였다.[470][157] 이 연설에서 왓슨은 8세 때 학부모 연극 연출을 맡으려 했을 때 '남자처럼 나댄다(bossy)'는 말을 듣고 혼란스러웠던 경험,[469][162] 14세 때 언론으로부터 성적 대상화를 경험한 것,[162][163] 15세 때 여자 친구가 근육질로 보이기 싫다는 이유로 스포츠팀을 그만둔 사례 등을 언급하며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470] 그녀는 페미니즘을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믿음"으로 정의하며,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평등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470][157] 또한 페미니즘이 '남성 혐오'와 동일시되는 현실을 비판하며, 이러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470][157] 왓슨은 연설에서 "우리는 모두 성별을 두 개의 상반된 이상이 아닌 스펙트럼으로 인식해야 할 때"라며, "남성들이 이 멍에를 짊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들의 딸, 누이, 어머니는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들들도 취약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허락을 받게 될 것이고 [...] 더 진실하고 완전한 자신의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더 많은 남성들의 동참을 촉구했다.[157] 이 연설은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며, 행사 이후 UN Women 웹사이트가 마비되기도 했다.[109]
연설 직후, 왓슨은 자신의 누드 사진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누드 사진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장난이라 생각했지만, 여성 인권에 대해 말하자마자 협박을 당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것이 바로 여성들이 처한 현실이며, 위협받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471][164] 그녀는 이러한 위협이 자신을 위축시키는 대신 오히려 여성 인권 운동에 더욱 힘쓰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164]
2015년,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왓슨의 UN 연설을 듣고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472][165] 같은 해 9월, 왓슨은 UN Women 친선대사로서 우루과이를 처음 방문하여 몬테비데오의 우루과이 국회의사당에서 여성의 정치 참여 필요성을 강조하는 연설을 했다.[473][166] 2014년 12월, 미즈여성재단(Ms. Foundation for Women)이 실시한 '2014 페미니스트 셀러브리티'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474][168] 《타임지》가 선정한 '여성들의 성과 톱10'에도 이름을 올렸다. 2015년 1월에는 세계 경제 포럼 연례 회의에서 남녀 평등에 관한 연설을 했다.[475][169] 또한 남성잡지 《애스크멘》(AskMen)의 '2015 TOP 99 최우수 여성' 설문조사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476][170] 같은 해 타임 100 목록에 처음으로 선정되었으며, 뉴욕 타임스 전 편집장 질 에이브럼슨은 왓슨의 "페미니즘에 대한 대담하고 영리한 접근"과 남성들의 참여를 유도하려는 노력을 "신선하다"고 평가했다.[477][171] 왓슨은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마야 안젤루를 자신에게 영향을 준 인물로 꼽았다.[177]
2016년 1월, 왓슨은 페미니즘 굿리즈 독서 모임인 'Our Shared Shelf'를 개설했다.[478][479][172] 이 모임은 페미니즘 관련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토론을 장려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매달 책 한 권을 선정해 마지막 주에 토론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478][172] 첫 선정 도서는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길 위의 나의 인생》(My Life on the Road)이었고, 왓슨은 2월 런던에서 스타이넘과 직접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480][481][173][174] 'Our Shared Shelf'는 2020년 1월 업데이트를 중단했지만, 추천 도서 토론 게시판은 계속 운영되고 있다.[175] 이 북클럽에서는 마거릿 애트우드, 마르잔 사트라피, 오드리 로드, 민진 리 등 다양한 여성 작가들의 책을 통해 유색 인종, 트랜스젠더, 탈식민주의 등 교차성 문제를 다루었다.[288]
2016년 국제 여자 어린이의 날에는 말라위를 방문하여 조혼 풍습에서 벗어나 학교로 돌아온 소녀들과 전통 부족 지도자들을 만났다.[176] 또한 'Book Fairies', 'Books on the Underground'와 같은 단체와 협력하여 대중교통에 책을 비치하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177]
2017년 3월, 《베니티 페어》 화보 사진 중 가슴 일부가 노출된 사진이 공개되자 일부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위선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178] 이에 대해 왓슨은 "페미니즘은 다른 여성을 비난하는 몽둥이가 아니라 자유, 해방, 평등에 관한 것"이라며 "내 가슴이 그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반박했다.[179][178]
왓슨은 페미니스트 담론 내에서 자신의 백인 특권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180] 영국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백인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계속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내가 의미 있게 참여하고 더 잘 이해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181] 그녀는 'Our Shared Shelf'에 교차성에 대한 글을 쓰면서 "백인으로서 어떤 혜택을 받았는가? 구조적으로 인종차별적인 시스템을 어떻게 지지하고 유지하는가?"와 같은 자기 성찰 과정을 공유했다.[182]
왓슨은 Time's Up UK의 창립 멤버이며, 제71회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에서 이 운동의 출범을 조율했다.[183][184] 또한 영국 영화 협회(BFI)와 영국 영화 텔레비전 예술 아카데미(BAFTA)가 시행하는 괴롭힘 및 폭력 방지 지침 수립을 도왔다.[184][185] 2018년 2월 Time's Up UK에 100만파운드를 기부했으며,[186] 같은 해 10월에는 이 단체의 '정의 및 평등 기금' 설립을 지원하여 영국 내 여성 단체에 기부금이 전달되도록 했다.[186] 제75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는 여성 폭력 문제 활동가 마라이 라라시와 함께 참석했다.[187]
2019년 7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들을 위한 법률 상담 헬프라인 개설을 지원했다. 이 헬프라인은 여성의 법적 권리 증진을 위해 활동하는 자선 단체 'Rights of Women'에서 운영한다.[188][289] 같은 해,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이 소집한 G7 성 평등 자문 그룹에 합류하여 G7 국가들의 여성 권익 증진 및 외교 정책 핵심 의제화를 촉구했다.[189] 그녀는 2월 파리 엘리제 궁에서 열린 첫 회의와 8월 제45차 G7 정상 회의에 위원회 일원으로 참석했다.[190]
왓슨은 인터뷰와 트위터를 통해 트랜스젠더 권리에 대한 지지를 여러 차례 표명했으며, 특히 J. K. 롤링의 성 정체성 관련 발언 논란 당시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 대한 지지 입장을 명확히 했다.[181][191][290] 다니엘 래드클리프 등 다른 《해리 포터》 출연진들도 왓슨의 입장에 동조했다.[290] 또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을 지지하며, 2020년 6월 Blackout Tuesday 참여 이후 소셜 미디어를 통해 반인종차별 교육 자료를 공유하고 레니 에도-로지의 책 《Why I'm No Longer Talking to White People About Race》에 대한 Spotify 팟캐스트 에피소드를 게시했다.[192]
2020년 7월, WOW 재단과 협력하여 런던 지하철 노선도의 270개 역 이름을 런던 역사를 만든 여성 및 논바이너리 인물들의 이름으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 결과물은 2021년 국제 여성의 날에 출판될 예정이었다.[193] 2021년에는 영국 정부가 2021년 유엔 기후 변화 회의(COP26)에서 여성들을 의사 결정 역할에 포함시킬 것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에 400여 명의 인사들과 함께 서명했다.[194]
2022년 1월, 왓슨은 인스타그램에 "연대는 동사다(Solidarity is a verb)"라는 문구와 함께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 사진을 게시하여 팔레스타인 연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에 대해 전 이스라엘 과학부 장관 대니 다논과 유엔 주재 이스라엘 대사 길라드 에르단 등 일부 이스라엘 인사들이 반발하며 비판했으나,[196] 사에다 와르시 영국 보수당 상원의원, 수전 서랜던, 마크 러팔로, 미리엄 마르고이스,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피터 카팔디, 맥신 피크, 비고 모텐슨, 스티브 쿠건, 찰스 댄스 등 40명이 넘는 예술가들이 'Artists for Palestine UK'를 통해 왓슨에 대한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196][197]
왓슨은 환경 정의[198]와 기후 변화 완화를 위한 활동에도 적극적이다.[199] 2021년 유엔 기후 변화 회의에서는 그레타 툰베리 등 기후 활동가들과 함께 기후 변화 관련 패널 토론을 진행했다.[201] 한편, 2019년 룬드 대학교 연구진이 분석한 유명인 10명의 탄소 발자국 연구에서 왓슨은 분석 대상 중 가장 낮은 배출량을 기록했으나, 항공 이용만으로 인한 CO2 배출량은 연간 15.1ton으로, 세계 평균의 3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200]
8. 출연 작품
2001년 영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역으로 데뷔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후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까지 총 8편의 《해리 포터》 시리즈 전편에 출연하며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역을 연기했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성공으로 2009년에는 "지난 10년간 가장 흥행 수입을 많이 올린 여배우"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되었으며[226], 2011년에는 《포브스》 선정 "스크린에서 가장 높은 흥행 수입을 올린 커플" 1위에 루퍼트 그린트와 함께 이름을 올렸다.[227]
《해리 포터》 시리즈 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영화와 텔레비전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주요 출연작으로는 애니메이션 영화 《데스페로 이야기》(목소리), 영화 《마릴린과 함께한 일주일》, 《월플라워》, 《블링 링》, 《노아》, 《미녀와 야수》, 《작은 아씨들》 등이 있으며, 텔레비전 영화 《발레 슈즈》에도 출연했다. 2015년에는 타임 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228]
8. 1. 영화
1999년, J. K. 롤링의 베스트셀러 소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영화화하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캐스팅이 시작되었다. 캐스팅 에이전트는 왓슨의 옥스퍼드 극장 연극 교사를 통해 그녀를 발견했고, 제작자들은 그녀의 자신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왓슨은 영국 전역의 유망한 아역 배우들과 경쟁하며 여덟 번의 오디션을 거쳤고, 결국 제작자 데이비드 헤이먼에 의해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역에 발탁되었다. 다니엘 래드클리프와 루퍼트 그린트는 각각 해리 포터와 론 위즐리 역을 맡았다. 롤링 작가는 왓슨의 첫 스크린 테스트 때부터 그녀를 지지했다고 알려졌으며, 오디션에서 보여준 확신에 차면서도 자연스러운 연기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360]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2001년에 개봉하여 왓슨의 영화 데뷔작이 되었다. 이 영화는 개봉 첫날과 첫 주말 흥행 기록을 경신하며 2001년 최고 흥행 수익을 올린 작품이 되었다.[365][366] 비평가들은 세 주연 배우의 연기를 호평했으며, 특히 왓슨은 자주 언급되며 찬사를 받았다.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그녀의 연기를 “감탄스럽다”고 평했고,[367] ''IGN''은 그녀가 “영화를 훔쳤다”고 극찬했다.[368] 왓슨은 이 영화로 다섯 개의 상 후보에 올랐고, 젊은 예술가상에서 젊은 여자연기상을 수상했다.[369]
이후 왓슨은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2002),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2004), 《해리 포터와 불의 잔》(2005),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2007),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2009), 그리고 2부작으로 나뉜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1부 2010, 2부 2011)까지 총 8편의 《해리 포터》 시리즈에 모두 출연하며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역을 연기했다.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왓슨의 연기는 꾸준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비밀의 방》에서는 배우들의 성장을 언급하는 평이 있었고,[370] 《아즈카반의 죄수》에서는 더욱 적극적인 헤르미온느를 연기하며 ''뉴욕 타임즈''로부터 "래드클리프 씨의 단조로움은 왓슨 양의 연기에 의해 상쇄된다"는 호평을 받았다.[374] 《불의 잔》에서는 10대가 된 배우들의 성숙함이 돋보였으며,[377] 《불사조 기사단》의 성공으로 왓슨은 내셔널 무비 어워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385] 2007년 7월에는 래드클리프, 그린트와 함께 헐리우드의 TCL 차이니즈 시어터 앞에 손, 발 프린트를 남기기도 했다.[386]
《해리 포터》 시리즈는 왓슨에게 큰 명성과 부를 안겨주었다. 2007년까지 시리즈 출연으로 벌어들인 수입은 1000만파운드 이상으로 알려졌으며,[351] 2010년에는 ''포브스'' 선정 '헐리우드에서 가장 높은 수입을 올린 여성 스타'로 뽑히기도 했다 (2009년 수입 1900만파운드).[388] 마지막 두 편의 계약을 앞두고 잠시 망설이기도 했지만, "헤르미온느를 그렇게 떠나 보낼 수는 없었다"며[391] 최종 계약을 완료했다.[392] 《죽음의 성물》 1, 2부에서는 편당 1500만달러의 개런티를 받았다. 촬영을 모두 마친 후 왓슨은 “《해리 포터》 시리즈에 출연했다는 걸 여전히 자랑스러워하고 있을 것”이라며 10년간의 여정에 대한 벅찬 마음을 표현했다.
《해리 포터》 시리즈 외에도 왓슨은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2007년에는 BBC TV 영화 《발레 슈즈》에 출연하여 《해리 포터》 외 첫 연기를 선보였고,[393][394] 2008년에는 애니메이션 영화 《작은 영웅 데스페로》에서 피 공주 역으로 목소리 연기에 도전했다.[399]
《해리 포터》 시리즈가 끝난 후 첫 영화는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2011)로, 의상 보조 루시 암스트롱 역을 맡았다.[413][414] 이후 성장 영화 《월플라워》(2012)에서 사만다 "샘" 버튼 역을 맡아 연기력을 인정받았고,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블링 링》(2013)에서는 니콜레트 "니키" 무어 역으로 변신을 시도했다. 코미디 영화 《디스 이즈 디 엔드》(2013)에는 본인 역으로 카메오 출연하여 웃음을 선사했다.[417][418]
2014년에는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의 대작 《노아》에서 러셀 크로우의 양녀 일라 역을 연기했고,[352] 2015년에는 스릴러 영화 《콜로니아》와[429] 《리그레션》에[430][431] 출연하며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다.
2016년에는 잠시 연기 활동을 중단하고 "자기 개발"과 여성 인권 운동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432]
2017년, 왓슨은 디즈니 실사 영화 《미녀와 야수》에서 벨 역을 맡아 세계적인 흥행 성공(전 세계 수익 12억달러 이상)을 이끌었다.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노래 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434] 같은 해 개봉한 《더 서클》에서는 톰 행크스와 호흡을 맞췄다.[435]
2019년에는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작은 아씨들》에서 네 자매 중 첫째인 마거릿 "메그" 마치 역을 맡아 시얼샤 로넌, 메릴 스트립, 티머시 섈러메이 등과 함께 연기 앙상블을 이루었다.[436][437]
연도 | 제목 원제목 | 역할 | 감독 |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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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Harry Potter and the Philosophers Stone'' |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 크리스 콜럼버스 | 스크린 데뷔작 |
2002 |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Harry Potter and the Chamber of Secrets | |||
2004 |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Harry Potter and the Prisoner of Azkaban | 알폰소 쿠아론 | ||
2005 | 해리 포터와 불의 잔 Harry Potter and the Goblet of Fire | 마이크 뉴얼 | ||
2007 |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Harry Potter and the Order of the Phoenix | 데이비드 예이츠 | ||
2008 | 작은 영웅 데스페로 The Tale of Despereaux | 피 공주 (목소리) | 샘 펠 로버트 스티븐하겐 | 애니메이션 영화 |
2009 |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 Harry Potter and the Half-Blood Prince |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 데이비드 예이츠 | |
2010 |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1부 Harry Potter and the Deathly Hallows – Part 1 | |||
2011 |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 Harry Potter and the Deathly Hallows – Part 2 | |||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 My Week with Marilyn | 루시 암스트롱 | 사이먼 커티스 | ||
2012 | 월플라워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 사만다 "샘" 버튼 | 스티븐 크보스키 | |
2013 | 블링 링 The Bling Ring | 니콜레트 "니키" 무어 | 소피아 코폴라 | |
디스 이즈 디 엔드 This Is the End | 본인 | 에번 골드버그 & 세스 로건 | 카메오 출연 | |
2014 | 노아 Noah | 일라 | 대런 애러노프스키 | |
2015 | 콜로니아 Colonia | 레나 | 플로리안 갈렌베르거 | |
리그레션 Regression | 앤젤라 그레이 |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 ||
2017 | 미녀와 야수 Beauty and the Beast | 벨 | 빌 콘던 | |
더 서클 The Circle | 메이 홀랜드 | 제임스 폰설트 | ||
2019 | 작은 아씨들 Little Women | 마거릿 "메그" 마치 | 그레타 거윅 |
8. 2. 텔레비전
원제목Ballet Shoes
The Vicar of Dibley
Harry Potter 20th Anniversary: Return to Hogwarts